히터뷰ㅣ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 / 심예슬 기자
"다양한 변이 동시 교정…RNA 자체가 치료제로 작동"
알지노믹스가 트랜스-스플라이싱 기반 RNA 편집 플랫폼 기술로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신뢰를 얻었다. 선급금, 마일스톤과 옵션 등을 포함해 총 13억달러를 초과하는 규모이고 상업화 매출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로 지급된다.
알지노믹스는 자사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유전성 난청 치료용 RNA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릴리는 전임상부터 임상, 생산, 상용화까지의 후반부 전 과정을 전담하며, 알지노믹스는 후보물질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한 채 릴리에 독점 실시권을 부여한다. 이번 계약은 알지노믹스의 플랫폼 기술이 글로벌 톱티어 제약사의 철저한 기술 검증을 거쳐 실질적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알지노믹스는 어떤 기술적 차별성과 전략으로 이 계약을 이끌어냈을까. <히트뉴스>는 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성욱 대표는 "2022년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처음 릴리와 접촉했다. 당시 우리는 기술과 데이터를 소개했고, 이후 릴리로부터 후속 문의가 이어졌다. 그렇게 1년 넘게 소통을 이어간 끝에, 2023년에 이르러 릴리 측에서 직접 우리의 물질을 활용해 효능을 검증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이후 릴리 연구진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기술 검증을 수행한 끝에 이번 협력이 성사됐고, 그동안의 짧지 않은 과정에 당사 연구소와 BD 팀의 헌신적 노고를 통해 이번 체결까지 오게됐다"고 밝혔다.
릴리가 주목한 기술은 '통째로 치환하는 RNA 편집기술'
알지노믹스가 보유한 트랜스-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trans-splicing ribozyme) 기술은 전사체(RNA) 수준에서 유전정보를 교정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DNA 편집 기술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크리스퍼(CRISPR)는 특정 DNA 염기서열을 절단하고, 베이스 에디팅(Base Editing)은 염기 하나를 정밀하게 교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알지노믹스의 기술은 질환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RNA 구간을 선택적으로 잘라내고 이를 정상 서열로 치환하는 구조로, RNA 분자 자체가 약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RNA 치료물질은 다양한 돌연변이들을 하나의 물질로 포괄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이성욱 대표는 "우리는 DNA를 고치지 않는다. RNA 자체가 치료제로 작동하고, 외부 단백질이나 세포 내부 기전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크리스퍼처럼 외부 단백질을 주입하거나 발현시키는 복잡한 과정 없이, RNA가 스스로 타깃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구조"라며 "트랜스-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은 세포 내에서 자체적으로 촉매 활성을 가지며 작동하기 때문에, 별도의 보조 시스템 없이 안정적 작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외부 단백질이나 세포 내 효소 시스템과 경쟁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구조적 간결성과 생체 적합성 측면에서 강점을 지닌다. 그는 "당사의 기술은 외부 단백질이나 세포 기전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작동한다. 크리스퍼처럼 단백질을 발현시키거나 주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성욱 대표는 "우리는 타깃 RNA를 자른 뒤, 원하는 부위만 정밀하게 치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당사 기술을 최적화함으로써 이 과정의 정확도를 매우 높힐 수 있었으며 치환 효율 또한 치료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며 "이는 곧 유전자 발현 수준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유전자 치료제 대부분은 유전자를 과발현시키는 방식인데, 일부 질환에서는 이러한 과발현이 오히려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반면 우리 기술은 타깃 RNA만큼만 교체되기 때문에, 필요한 수준의 단백질을 타깃 RNA가 발현되는 조직 즉 필요한 조직에서만 발현되며 불필요한 독성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의 안전성 또한 주요한 강점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DNA는 한 번 손대면 되돌리기 어렵지만, RNA는 일시적이며 가역적이기 때문에 안전성이 높다"며 "우리는 DNA에는 손대지 않고, 잘못된 RNA만 선택적으로 교정하기 때문에 설령 오프타깃(off-target)이 발생하더라도 그 효과는 매우 일시적(transient)"이라고 말했다.
기존 RNA 기반 기술과의 차별성도 릴리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스 에디팅은 특정 염기 하나를 정밀하게 교정하는 방식이지만, 적용 가능한 위치나 변이 종류에 제한이 있어 돌연변이 스펙트럼이 넓은 질환에는 한계가 있다. 이 대표는 "대부분의 희귀·난치성 유전질환은 환자마다 돌연변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한 가지 유전자 위치만 교정하는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며 “우리는 하나의 치료물질로 다양한 돌연변이를 동시에 타깃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릴리는 과거 RNAi, RNA 베이스 에디팅 등 다양한 RNA 기반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도 협력한 바 있다. 그러나 유전성 난청처럼 돌연변이의 위치와 형태가 다양한 질환에 대해서는, 하나의 약물로 광범위한 변이를 동시에 커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트랜스-스플라이싱 방식의 RNA 편집 기술이 그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트랜스-스플라이싱 방식은 변이의 위치나 형태가 달라도 하나의 동일한 치료물질로 교정이 가능하다”며 "환자마다 유전자 변이가 다른 유전성 난청을 비롯한 다양한 유전 질환에 특히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RNA 편집 기술, 치료제로 현실화…독자 파이프라인 가동
일라이 릴리와의 RNA 편집 기반 유전성 난청 치료제 공동개발 계약은, 알지노믹스의 기술이 단순한 가능성을 넘어 실제 치료제 개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시장에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회사의 전략은 기술이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알지노믹스는 독자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입과 코스닥 상장 준비를 동시에 추진하며, 기술 기반 바이오기업으로서의 자립성과 장기 성장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알지노믹스는 릴리와의 공동개발 외에도 고형암, 유전성 망막색소변성증, 알츠하이머병을 적응증으로 하는 RNA 편집 기반 파이프라인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항암제 후보는 국내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유전성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는 호주에서 임상 1상 승인을 받은 상태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초기 후보물질 스크리닝 단계에 있다.
이성욱 대표는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는 국소 투여가 가능하고, 동물모델에서 교정 효율이 매우 높게 확인돼 임상 진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항암제 파이프라인은 HSV-TK 유전자를 트랜스-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으로 암세포 특이적으로 발현시키고, 여기에 프로드럭(prodrug)을 함께 투여해 치료 효과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성욱 대표는 "해당 유전자가 발현되면 세포 안에서 프로드럭이 인산화되어 활성 약물로 전환된다. 이 약물이 DNA 복제 중간에 개입해 세포 분열을 멈추게 하고, 결국 암세포를 사멸시킨다"며 "세포 간 연결막(junction)을 통해 주변 세포로 퍼지면서 유전자가 바뀌지 않은 세포까지도 사멸시키며 항암 면역을 자극하는 바이스탠더 효과(bystander effect)가 있다"고 설명했다. 항암제 파이프라인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HCC와 GBM에 대하여 희귀의약품 및 패스트트랙을 지정받았다.
한편,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현재 전임상 단계에 있으며, 트랜스-스플라이싱 리보자임을 이용한 RNA 교정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평가 중이다. 이성욱 대표는 "신경세포는 분열이 없어 DNA 기반 유전자 치환 교정은 어려울 수 있지만, RNA는 계속 생성되기 때문에 반복적인 지환 교정 기회를 갖는다”며 “이런 점에서 RNA 기반 기술이 특히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성 평가 앞두고 코스닥 상장 준비…"두 축 전략으로 확장"
알지노믹스는 지난해 프리IPO를 완료한 뒤, 현재 기술성 평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오는 6월 중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으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곧바로 상장 예비심사에 돌입할 계획이다. 회사는 기술 기반 바이오기업으로서, 장기 임상 성과와 함께 플랫폼 기술의 수익화 전략을 병행하는 '이중 축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릴리와의 이번 계약은 당사의 RNA 교정 기술이 글로벌 제약사와도 공동개발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라며 "앞으로도 유사한 형태의 플랫폼 기반 공동개발을 확대해 단기 수익을 확보하는 한편, 독자 파이프라인은 임상 후 기술이전 또는 궁극적으로 상용화까지 자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계약은 회사 내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는 "릴리와의 계약 이후 해외 제약사로부터의 미팅 요청이 급증했고, 내부적으로도 구성원들이 자사 기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기술은 결국 실질적인 검증을 통해 신뢰를 얻게 되는 법이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협력 이상으로, 알지노믹스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대외적으로 입증한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트랜스-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 기술은 초창기에는 일부로부터 '왜 알지노믹스 이외에는 시도하는 기업이 없냐'는 그 적용 가능성에 대하여 의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릴리와의 계약을 통해 그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우리는 기존 치료 전략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희귀·난치 질환에서 이 기술이 새로운 표준 치료(standard therapy)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